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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의하면 우리가 떠오르는 사람은 단연 허준이다. 
허준(許浚: 1539년 ~ 1615년) 은 두말할 것없는 조선의 최고의 명의이며, 현세의 사람들에겐 동의 보감이라는 드라마나 책을 통해 그의 의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동시대의 의원 중 허준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인정한 침술의 대가 허임(許任: 1570년 ~ 1647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허임은 광해군을 치료한 것은 물론 광해군의 부친 선조 편두통을 침술 하나로 치료했다는 기록이 있다. 
허준 조차 허임의 침술을 두고 "저보다 침술이 뛰어나다"고 평했고, 선조 역시 "조선에서 침술은 허임이 최고다"고 말했다. 
하지만 광해군 2년 시절 조정 대신들은 허임을 내치라고 간곡히 요구했다. 
그 이유는 허임이 천민 출신이기도 했지만, 반골기질이 강했기 때문이다.  
허준(許浚)과 허임(許任).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동시대인이다. 
그러나 허준에 비해 허임의 이름은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허준은 소설 <동의보감>과 TV 드라마 <허준>을 통해 현대인들에게까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주인공.  
특히 소설과 드라마에서 허준은 탕약(湯藥)은 물론이고 침구(鍼灸)를 활용해 병자를 고치는 명의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선조편에는 선조 37년(1604년) 9월 23일에 당대 최고의 의관 허준과 최고의 침의 허임이 선조의 편두통을 함께 치료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허준과 허임의 나이는 각각 58세와 34세였는데, 임금이 “침을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자 노의(老醫) 허준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침의들은 항상 말하기를 ‘반드시 침을 놓아 열기를 해소시킨 다음에야 통증이 감소된다’고 합니다. 
소신은 침 놓는 법을 알지 못합니다마는 그들이 이러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 
허임도 평소에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뒤에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일리가 있는 듯 합니다.” 
여기서 허준이 자신은 침 놓는 법을 모른다고 분명하게 밝혔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선조는 병풍을 치고 침을 놓으라고 명하였다. 
왕세자(광해군)와 의관(허준)만 방안에 남을 수 있었고, 나머지 대신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침을 들어 벌거벗은 임금의 신체에 직접 시술한 주인공이 바로 허임이었다. 
허임은 관노비 아버지와 사노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허임은 아픈 어머니 치료를 위해 침술의를 찾았으나, 치료비가 없어 그 곳에서 일을 해주는 것으로 치료비를 대신하다가 어깨 너머로 침술을 익히게 됐고 한다. 
그후 허임의 뛰어난 침술이 소문나 선조와 광해군에게까지 그 능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허임은 선조 시절 종6품에서 정3품으로 파격 승진한데 이어,   광해군 시절 연평현령, 양주목사, 남양부사 등 주요 관직까지 겸했다. 
광해군은 신하들 반발에도 불구 허임을 감쌌고 훗날 어의까지 명했다. 
허임은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자 어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공주로 내려가 자신처럼 가난한 백성들을 도왔다고 한다. 
허임은 "모두 읽기가 쉽고 생명을 살리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침술 모든 지식을 담아 침구경험방을 집필했다. 
침구경험방은 조선은 물론 일본, 중국에서도 편찬 돼 그를 조선제일침이라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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